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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설날을 보내며...

by 추억거리 2022.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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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오래만에 글을 올려본다.  블로그를 개설한후 첨 인 것 같다.   시댁은 명절때는 많이 갔지만 친정집은 명절때 정말 오래만에 간 것 같다.  아들이 가자고 졸라대는 바람에 고민을 하고 나섰다.  코로나도 그렇고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시댁은 가깝지만 친정은 멀어서 항상 망설였던 건 사실이다.  코로나때문에 2년전에 갔고 특히 명절때는 4년 이상이 된 듯 하다.  그러다보니 친정 식구들도 안본지 오래 된 것 같다.  차가 막히면 9시간이상 걸릴 수 있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시간을 잘 선택해서 5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이번 명절은 코로나도 그렇고 엄마 생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나누어서 오기로 했다.  난  5남 2녀의 막내로 딸이 귀한 집에 태어 났다.  아버지는 먼저 돌아가시고 친정 엄마는 올해 90세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명절은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90세가 되면 동네 잔치라도 할려고 했는데 코로나로 하지 않았다.  친정 엄마는 유난히 막내 딸인 나를 참 애틋하게 여기신다.  항상 보고 싶다고 하는데 너무 먼곳에 살아서 자주 가지 못하고  언니 오빠들은 자식들이 거의 다 커서 자유롭지만 난 아직도 고등학생을 키우고 있는 엄마라 아직은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2박 3일 머물면서 정신없이 언니들이랑 밥을 하느라 바빴다.  예전 같으면 친정 엄마가 다 해놓으셨지만 이제는 나이가 드셔서 조금은 힘들어 하신다.  내 기억에 친정엄마는 강하셨다.  80세 초반까지도 직접 바닷가에 가서 굴이나 꼬막을 잡으셨으니 말이다.  평생을 참 고생하신 엄마이다.  젊었을때는 우리집이 참 부유했다고 한다.  큰 배를 가진 선장이었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큰 사고를 당한후 한순간에 집은 쫄딱 망했다. 그래서인지 세째, 네째 오빠들은 한참 예민한 시기에 당해서인지 아직도 속에 응어리가 많다.  가끔 바다를 쳐다보면서 혼잣말을 하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깡촌인데도 나의 아버지는 큰오빠를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려고 했다고 친정엄마한테 들었다.  그만큼 부유했던 집안이었던 것 같다.  난 태어나지도 않아서 잘 모른다.  딸은 나와 언니이다.  언니는 이중에서 다섯째이다.  첫딸을 낳았을때도 우리집은 잔치를 했다고 한다.  딸이 너무 귀해서 말이다.  여하튼 나의 집안은 그렇다.

 

머무는 동안 할일이 많아 바닷가도 가보지를 못했다.  더 웃긴건 친정엄마집이 준이층이 있는데 올라가보지도 못했다.. ㅎㅎ .. 뭐이리도 바빴는지..  아들이 가래떡이 먹고 싶다해서 오빠가 쌀을 담그고 가래떡까지 해 왔다.  근데 친정 엄마는 방앗간도 정육점도 평생 가시는 곳만 가신다.  방앗간도 아드님이 오셔서 엄마 일을 도와주시고 계셨다.  그런데 얘기를 하다보니 중학교 동창이었다. ㅋㅋ  난 고등학교를 다른 지역으로 가다보니 내 고향에서는 중학교까지 사는게 다였다.  그래서인지 중학교 친구들은 동네 친구외에는 기억을 거의 하지 못했다.  여하튼 세상 참 좁았다.  가래떡 뽑는 곳에서 중학교 동창을 만나더니  ...

 

친정엄마가 언제까지 사 실 줄은 모르겠지만 따뜻한 밥한끼 해 드리고 와서 기분은 좋았다.  조금이라도 젊었을때 알아보실때 내 자식들도 보여드리고 더군다나 그리 보고 싶은 막내딸인 나도 보여드리고 왔다.  자주 가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이젠 다리에 힘도 점점 없어지셔서 걷기도 힘들어하시지만 걸어다닐 수 있고.. 아직은 이렇게 많은 손자, 손녀들 이름도 기억을 하시는 엄마다.  내 기억에 엄마는 기억력이 굉장히 좋으시다.  손자, 손녀들이 16명인데 이름을 모두 정확히 알고 계신다.  항상 명절때 식구들이 와서 다 가버리면 많이 서운해 하신다.  지금은 가까이 사는 언니와 오빠들이 종종 들르긴 하지만 그래도 서운하시나 보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서 자식들이 다 모이지도 못하고 동네 회관에서도 자유롭게 놀지 못하니 많이 외롭기도 하신 것 같다.  

 

빨리 일상이 회복 되었음 좋겠다.  나도 아들이 졸업타면 조금이나마 자유롭겠지만 그때까지 친정엄마가 버텨 주실지는 모르겠다.  아직은 특별히 아픈곳도 없고 힘은 들어도 자유롭게 이동을 하시지만 한해가 다르게 많이 약해진걸 느낀다.  하지만 지금도 마늘, 양파, 고구마 등 직접 해서 바리바리 택배를 보내신다.  옛날에는 너무 자주 보내서 다 해먹지를 못했는데 그나마 지금은 가끔 보내는 편이시다.  때에 맞추어서 굴, 고막, 낙지, 생선, 게 등도 보내시는 친정 엄마이시다.

엄마는 떠나 보내는 자식손에 바리바리 싸서 주신다.  한번도 빈손으로 보낸적이 없으시다.  난 이날도 굴, 고막, 생선, 쑥떡, 가래떡, 햄, 배, 사과 등... 많이 싸주셨다.  항상 그렇다. 친정엄마는 자식이 먼저셨다.  지금도 그렇다. 

난 2022년 설날을 친정엄마와 보냈다.  집에 왔을때는 많이 피곤했다.  그래서 이제야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

 

내가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쓴건 친정엄마와의 기록을 조금이나마 적어놓고자 한다.  먼 훗날 이날(2022년 설날)에 내가 갔어지.. 라고 기억을 하지 않을까 싶다.  

 

 

답방은 조금 천천히 갈게요.. 양해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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